용의 숙명
(마법사의 링 연작소설 제 3권)
모건 라이스
모건 라이스 작가 소개
모건 라이스는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USA 투데이(USA Today) 베스트셀러 작가로 선정됐다. 저서로는 17권으로 구성된 장편 서사 판타지 연작소설 ‘마법사의 링,’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11권의 연작소설 ‘뱀파이어 저널(집필 중),’ 또 다른 베스트 셀러 1위인 2권의 스릴러 소설 ‘생존 3부작(집필 중)’이 있다. 이 외에도 5권의 장편 서사 판타지 연작소설인 ‘왕과 마법사(집필 중)’를 새롭게 집필 중이다. 모건 작가의 소설은 오디오 북과 인쇄 본으로 출판 됐고, 25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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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건 라이스 작가에 보내는 찬사
“음모, 대항책, 미스터리, 용맹한 기사들, 실연의 아픔이 가득한 사랑의 결실, 기만, 배신 등 마법사의 링은 즉각적인 흥행요소를 고루 갖춘 소설이다. 읽는 내내 즐거움이 가득하고 연령에 관계없이 누구나 매료된다. 판타지 소설 애독자라면 영구 소장도서로 추천한다.”
--도서 및 영화 평론, 로버트 메토스.
“재미있는 서사 판타지 소설.”
—컬커스 리뷰(Kirkus Reviews)
“눈을 뗄 수 없는 무언가가 이 책에서 시작된다.”
--샌 프란시스코 북 리뷰(San Francisco Book Review)
“액션이 가득한 소설…. 흥미로운 라이스 작가의 글과 견고한 전제.”
--퍼블리셔 위클리(Publishers Weekly)
“기상이 넘치는 판타지….젊은 성인 시리즈물의 시작.”
--미드웨스트 북 리뷰(Midwest Book Review)
모건 라이스 저서
왕과 마법사
용의 부상 (제1권)
피어나는 용맹 (제2권)
명예의 무게 (제3권)
용맹의 구축 (제4권)
어둠의 왕국 (제5권)
마법사의 링 연작소설
전사로의 원정 (제1권)
왕들의 행군 (제 2권)
용의 숙명 (제 3권)
명예의 눈물 (제4권)
영광의 맹세 (제5권)
용맹의 충전 (제6권)
검의 의식 (제7권)
수여된 무기 (제8권)
주술에 사로잡힌 하늘 (제9권)
방패의 바다 (제10권)
강철 집권 (제11권)
화마에 갇힌 땅 (제 12권)
여왕들의 규칙 (제13권)
형제들의 맹세 (제14권)
인간의 꿈 (제15권)
전사들의 마상 시합 (제16권)
전투의 선물 (제17권)
생존 3부작 연작소설
아레나 원: 슬레이버서너스(제1권)
아레나 투(제2권)
뱀파이어 저널 연작소설
일변 (제1권)
사랑 (제2권)
배신 (제3권)
운명 (제4권)
욕망 (제5권)
약혼 (제6권)
맹세 (제7권)
발견 (제8권)
부활 (제 9권)
갈망 (제10권)
숙명 (제11권)
저작권 © 2013 모건 라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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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입니다. 이름, 등장인물, 사업, 기관 명, 장소 명, 이벤트, 사건 등은 모두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산물이자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모든 이름과 생존 및 죽음에 대한 유사한 상황은 전적으로 우연입니다
Shutterstock.com.의 허가 아래 사용된 표지 이미지 저작권 Bob Orsillo 소유.
한글번역 김성희
목차
제 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제 7장
제8장
제9장
제10장
제 11장
제 12장
제13장
제14장
제15장
제16장
제 17장
제18장
제 19장
제 20장
제21장
제 22장
제 23장
제24장
제25장
제 26장
제27장
제 28장
제29장
제 30장
제31장
“용과 용의 분노 사이에 끼어들지 말거라.”
—윌리엄 셰익스피어
리어왕 中 에서
제 1장
맥클라우드 왕은 경사진 하이랜드 산맥을 따라 하강하며 맥길 왕가의 링 대륙으로 향했다. 그의 뒤로 수백만 명의 병사들이 함께했고, 왕은 산비탈을 전력으로 달리는 말의 고삐를 바짝 쥐고 몸을 지탱했다. 그는 허리를 세우고 채찍을 힘껏 들어올려 세차게 말의 가죽을 내리쳤다. 사실 채찍질이 필요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지만, 맥클라우드 왕은 그저 동물에게 고통을 선사하길 즐겼다.
맥클라우드 왕은 눈 앞에 펼쳐진 맥길 왕가의 이상적인 마을 전경에 군침이 돌았다. 남자들이 집을 떠나 무방비 상태였고 집 안의 여자들은 무더운 여름날에 대부분의 빨래를 널고 옷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았다. 대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마당 앞 닭들은 자유롭게 뛰놀고 있었다. 들끓는 가마솥이 저녁이 준비됐음을 알렸다. 맥클라우드 왕은 자신이 이곳에 가할 피해, 얻을 수 있는 전리품, 농락할 수 있는 여인들을 가늠하자 입가의 미소가 번졌다. 앞으로 마을이 흘릴 피눈물을 벌써부터 음미할 수 있었다.
병사들은 계속해서 달리고 달렸다. 수많은 말들이 번개처럼 쏜살같이 전원지대에 쏟아져 나왔다. 마침내 누군가가 이들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병사를 대신 해 마을 보초를 서던 창을 든 소년이 상대편 군사들의 진입 소리에 몸을 일으켜 뒤를 돌아봤다. 맥클라우드 왕은 크게 확장되는 소년의 동공을 목격했다. 그의 표정에는 공포와 두려움이 절실했다. 이런 외딴 곳에 머무르며 한 평생 전쟁이라곤 모르고 산 게 분명했다. 소년은 비참하게도 전쟁을 치를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맥클라우드 왕은 지체하지 않았다. 늘 그래왔듯 가장 선두로 상대편 적의 목숨을 앗아가고 싶었다. 그의 병사들 또한 그런 왕의 심사를 잘 헤아렸다.
맥클라우드 왕은 다시 한번 채찍을 내리쳤다. 말은 몸을 부르르 떨었고 이내 속력을 더해 앞으로 뛰어나갔다. 맥클라우드 왕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무거운 철창을 높이 들어 몸을 젖힌 뒤 있는 힘껏 내던졌다.
늘 그래왔듯 명중이었다. 소년은 몸을 돌려 달아나려던 찰나에 그대로 창을 맞았고 그렇게 창과 함께 날아온 창의 힘에 실려 날아가 나무에 꽂혔다. 소년의 등뒤로 피가 쏟아져 나오자 맥클라우드 왕은 흡족했다.
맥클라우드 왕은 짧은 환호를 질렀다. 이에 맞춰 병사들은 맥길 왕가의 비옥한 대지를 향해 앞으로 전진했다. 병사들은 바람에 흔들리며 말의 허벅지를 쓸어 내리는 노란색 옥수수 밭을 갈라 마을 초입에 다가갔다. 이 모든 걸 황폐화하기엔 날이 너무 아름답게 눈부셨고 그림 같은 전경이 너무 황홀했다.
병사들은 무방비 상태의 마을로 진입했다. 이 곳은 안타깝게도 링 대륙의 외각, 하이랜드에 너무 가까이 위치했다. 진작에 이를 간파했었어야지, 맥클라우드 왕은 이런 생각을 하며 도끼를 휘둘러 마을의 이름이 새겨진 목재 판을 부쉈다. 그는 곧 이 마을의 이름을 새로 지어줄 심산이었다.
마을 내부로 병사들이 진입하자 그들 주변으로 이 외딴 곳에 사는 아낙들과 아이들, 노인들이 비명을 외쳤다. 마을 사람들은 약 백 여명 정도였고, 맥클라우드 왕은 이곳의 모든 마을 사람들이 하나도 빠짐 없이 전쟁의 대가를 치르게 하리라 다짐했다. 맥클라우드 왕은 한 젊은 여성을 주시하며 머리 위로 도끼를 치켜들었다. 여성은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몸을 숨기기 위해 집을 향해 허겁지겁 달렸다. 왕은 그녀를 죽일 마음이 없었다.
맥클라우드 왕이 던진 도끼는 그가 목표했던 대로 여성의 허벅지 뒷부분에 꽂혔고, 여자는 그대로 벌벌 떨며 넘어졌다. 맥클라우드 왕은 여성을 죽이기 보단 그저 불구로 만들길 바랬다. 몸이야 어찌됐든 후에 그녀와 즐길 생각에 목숨만은 살려둔 것이다. 맥클라우드 왕은 한눈에 그 여성을 선택했다. 길게 풀어헤친 금발 머리에 늘씬한 엉덩이를 가진 아직 18세가 채 되지 않은 소녀였다. 그녀는 이제 왕의 소유물이었다. 맥클라우드 왕이 그녀를 취한 이후, 아마도 왕은 그녀를 그제서야 죽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혹은, 목숨을 살려둘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시녀로 삼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맥클라우드 왕은 여성의 곁으로 말을 이끌며 환희의 비명을 질렀다. 이후 말에서 내려 여성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그녀를 붙잡았고 땅 위에서 그녀와 뒹굴었다. 땅바닥의 충격이 온몸으로 전해졌고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기분에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마침내, 삶의 의미를 되찾았다.
제2장
캔드릭 왕자는 폭풍의 눈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무기의 전당 한 가운데에서 열 두 명의 병사들과 백 명의 실버 전사들에게 둘러 쌓여, 이 불행한 상황에 함께 휩싸인 보안관장 달록을 마주하고 있었다. 달록은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는 진정 자신이 무기의 전당에서 가장 사랑 받는 왕족, 캔드릭 왕자를 그것도 그의 동료들이 함께 하고 있는 상황에서 체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는 진정 캔드릭 왕자의 동료들이 그저 왕자가 체포되는 모습을 지켜만 보고 수긍할거라 생각했던 것일까?
달록은 캔드릭 왕자를 향한 실버 전사들의 충성심과 믿음을 크게 관과 했다. 비록 음모이지만 달록은 왕자를 체포할 합법적인 명을 받고 이곳에 왔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캔드릭 왕자는 그의 동료들이 그가 체포되는 걸 절대 가만히 두고 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실버 전사들은 충성스런 삶을 살고 죽음에도 충성을 바쳤다. 이것이 실버의 신념이었다. 캔드릭 왕자 또한 다른 실버 전사 중 하나라도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했더라면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어찌됐든 평생을 함께 훈련 받고 함께 싸웠기 때문이다.
캔드릭 왕자는 깊은 침묵 속에 드리워진 긴장감을 느꼈다. 실버 전사들은 왕의 병사들을 향해 자신들의 무기를 겨누고 있었고 병사들은 주춤하며 이 상황을 불편해했다. 병사들은 분명 자신들 중 누구라도 칼을 빼어 든다면 대학살이 벌어질 것을 잘 알고 있었고, 현명하게도 그 누구도 그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병사들은 모두 제 자리에 멈춰 보안관장, 달록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달록은 긴장한 채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자신의 대의가 희망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병사들을 너무 적게 데려왔군요,” 캔드릭 왕자는 침착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응했다. “왕의 병사 12명 대 실버 전사 백 명. 보안관장이 불리합니다.”
얼굴이 붉어진 달록의 안색이 안 좋았다. 그는 목을 가다듬었다.
“주군, 우리는 모두 같은 왕국의 명을 따릅니다. 저는 싸울 마음이 없습니다. 주군이 옳습니다. 이 싸움은 저희에게 승리를 안겨주지 못합니다. 명령을 내리시면, 저희는 이 곳을 떠나 폐하께 돌아가겠습니다.
“그러나 주군께서도 개리스 왕께서 더욱 많은 병사들을 다시 보내실 거라는 걸 알고 계시지요. 제가 아닌 다른 이를 보내시겠죠. 그리고 그 모든 게 어떤 결말을 불러올지 짐작하시겠지요. 주군이 그들을 모두 죽일 수도 있지요. 그러나 주군께서는 진정 병사들의 피를 손에 묻히고 싶으신지요? 진정으로 내전을 일으키고 싶으신지요? 주군을 위해 실버 전사들은 기꺼이 목숨을 바치고 손에 피를 묻힐 겁니다. 그러나 그게 그들에게 옳은 일일까요?”
캔드릭 왕자는 달록의 말을 되새기며 달록을 마주했다. 그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왕자는 자신 때문에 그 누구도 다치는 걸 원치 않았다. 왕자는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지 그들을 핏빛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바램을 느꼈다. 또한 그의 동생 개리스 왕자가 얼마나 엉망이든지, 얼마나 형편없는 왕이든지 상관 없이 캔드릭 왕자는 자신 때문에 내전이 발생하는 사태는 막고 싶었다. 다른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는 직접적인 대면이 항상 가장 효과적인 방법만은 아니란 걸 익히 알고 있었다.
캔드릭 왕자는 동료인 아트미에게 다가가 천천히 그의 검을 내렸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다른 실버 전사들을 바라봤다. 왕자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나서준 실버 전사들의 행동에 깊은 감사를 느꼈다.
“나의 동료인 실버 전사들이여,” 왕자가 말을 이었다. “그대들의 보호에 황송할 따름이오, 그리고 분명 그대들의 행동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는 걸 확신하오. 모두가 나를 알고 있듯이, 나는 선왕이신 아버지의 죽음에 아무런 관련이 없소. 그리고 이 명령의 본질로써 이미 발견하게 된 용의자이자 진정한 암살자를 찾게 되면, 내가 바로 가장 처음으로 그에게 복수할 것이오. 나는 무고하오. 따라서 나는 내 자신이 내전의 발단이 되길 원치 않소. 그러니 부탁하겠소. 무기를 내려놓으시오. 난 저들이 무력으로 나를 데려가도록 허락하겠소. 링 대륙의 일원으로서 같은 일원과 싸워서는 안 되오. 정의가 살아있다면, 진실이 밝혀질 것이며 나는 그대들의 품으로 신속히 되돌아갈 것이오.”
실버 전사들은 마지못해 천천히 무기를 내려놓았고 캔드릭 왕자는 달록에게 몸을 돌렸다. 왕자는 앞으로 나서 달록과 함께 문 쪽으로 걸어가 병사들에게 포위됐다. 캔드릭 왕자는 그 한 가운데서 자랑스럽게 몸을 꼿꼿이 세웠다. 달록은 존경의 의미에서인지 또는 두려움에서인지 그렇지 않으면 캔드릭 왕자의 무고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서인지 왕자를 포박하지 않았다. 캔드릭 왕자는 스스로 감옥으로 향했다. 그러나 쉽게 모든 걸 포기해버린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무죄를 밝히고 감옥에서 벗어나 아버지의 암살자를 처형할 계획이었다. 그자가 행여 자신의 형제일지라도 말이다.
제3장
그웬돌린 공주는 왕실의 가장 깊숙한 내부에서 고드프리 왕자와 함께 손을 이리저리 꼬고 비틀며 눈 앞에 서 있는 스태픈을 바라봤다. 그는 독특해 보였다. 단지 그의 생김새가 볼품없고 허리가 휜 꼽추이기 때문이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을 가득 품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시선을 가만 두지 못했고 마치 죄책감에 몸부림치듯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한 발작도 움직이지 않았다. 다리가 덜덜 떨렸으며 낮은 목소리로 스스로에게 뭔가를 흥얼거렸다. 그웬 공주는 그가 이곳에서 보낸 세월로 인해, 오랜 시간 고립되어 지낸 이유로 이러한 독특한 인상을 풍기고 알 수 없는 행동을 한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웬 공주는 아버지께 무슨 일이 있어난 건지 그가 스스로 입을 열 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렸다. 그러나 몇 초가 지나고 몇 분이 지나고 스태픈의 눈썹 위로 땀이 흘러내리고 그의 몸이 더욱 심하게 떨리는데도 아무런 말을 들을 수 없었다. 무겁고 깊은 침묵만이 흘렀고, 침묵을 깨는 유일함은 스태픈의 흥얼거림이었다.
그웬 공주 또한 땀이 나기 시작했다. 무더운 여름 날 펄펄 끓는 솥이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 공주는 이 상황을 빨리 마치고 이곳을 떠나 다시는 이곳에 발길을 하고 싶지 않았다. 공주는 스태픈을 면밀히 살피며 그의 행동을 분석하고 그의 심중을 헤아리려 노력했다. 스태픈은 공주와 왕자에게 다 털어놓겠다고 약속했음에도 아직까지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다. 그의 행동을 유심히 보니, 다른 꿍꿍이가 있는 듯 했다. 분명한 건, 그가 겁을 잔뜩 먹었고 무언가를 숨기려 한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스태픈이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날 오물 통으로 무언가가 떨어졌습니다, 확신했었죠,” 스태픈은 시선을 외면한 채 말을 이었다. 그의 시선은 바닥을 향해 있었다. “그렇지만 그게 뭔지는 몰랐습니다. 금속이었죠. 우리는 오물 통을 그날 저녁 비웠고, 무언가가 강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소리가 달랐습니다. 그래서,” 스태픈은 다시 여러 차례 목을 가다듬으며 팔을 비틀거렸다. “그렇게, 그게 무엇이었든지, 강물에 휩쓸려 갔어요.”
“확실한가?” 고드프리 왕자가 다그쳤다.
스태픈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웬 공주와 고드프리 왕자는 서로를 마주보며 시선을 교환했다.
“그게 뭔지 대충이라도 보긴 했는가?” 고드프리 왕자가 압박했다.
스태픈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만 자네는 단검을 입에 올렸네. 보지도 못했다면서 그것이 단검이라는 걸 어찌 알았는가?” 그웬 공주가 물었다. 공주는 그가 어떤 연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스태픈은 헛기침을 했다.
“그렇게 말했던 건 그냥 그게 단검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스태픈이 설명했다. “그건 작은 금속이었어요. 단검이 아니면 무엇이었겠습니까?”
“그럼 자네는 오물 통의 밑부분을 확인 했는가?” 고드프리 왕자가 질문했다. “오물 통을 버린 뒤에? 아마도 그 물건이 바닥에 남았을 수도 있지 않나.”
스태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닥을 확인 했습니다,” 스태픈이 대답했다. “항상 그렇게 하지요. 아무것도 없었어요. 비어있었죠. 무엇이 있었든지 모두 강물에 떠내려갔어요. 모두 떠내려가는 걸 봤습니다.”
“만약 그게 금속이었다면, 떠내려 갈수가 없지 않은가?” 그웬 공주가 질문했다.
스태픈은 다시 한번 목을 가다듬고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강물이 참 묘합니다,” 스태픈이 대답했다. “물살이 참 세지요.”
그웬 공주는 고드프리 왕자와 의심의 눈빛을 교환했다. 고드프리 왕자의 표정으로 보아 그 또한 스태픈을 믿지 못하는 것 알 수 있었다.
그웬 공주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성급해졌다. 지금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불과 잠시만 해도 스태픈은 모든 걸 털어놓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그는 급작스레 마음을 바꿔버렸다.
그웬 공주는 스태픈에게 한발 다가갔고 무언가를 계속해서 감추려 하는 그를 노려봤다. 그녀는 가장 엄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마치 아버지에게서 느꼈던 무서운 위엄이 그녀 속에서 뿜어 나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공주는 그가 알고 있는 전부를 밝혀야 갰다고 다짐했다. 특히 그것이 아버지의 암살자를 찾는 단서가 된다면 더더욱 그러했다.
“거짓을 고하고 있구나,” 공주의 어조가 강철처럼 냉정했고 그 속의 내재된 위엄에 공주 자신 또한 놀라웠다. “왕족에게 거짓을 고하면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지 말고 있는 것이더냐?”
스태픈은 펄쩍 뛰며 양 손을 움켜 쥐었다. 잠시 공주의 얼굴을 힐끔 보더니 이내 시선을 돌렸다.
“죄송합니다,” 스태픈이 애원했다. “죄송합니다. 부탁 드립니다, 그게 다입니다.”
“자네는 아까 우리에게 모든 걸 털어놓으면 감옥 행을 면해줄 수 있냐고 물었지,” 공주가 말을 이었다. “그러나 자네는 아무것도 털어놓지 않았네. 아무런 얘기도 아니었다면 왜 그런 부탁을 했는가?”
스태픈은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채 바짝 마른 입술을 핥았다.
“저…전…음,” 스태픈은 말을 꺼냈다 다시 말을 잇지 못하기를 반복했고 이내 목을 가다듬었다. “저는 걱정이 돼서요…오물 통에 뭔가가 떨어졌는데 신고하지 않은 게 걸릴까 걱정돼서요. 그게 다입니다. 죄송합니다. 그게 뭔지 몰랐어요. 이젠 사라졌고요.”
그웬 공주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주시했다. 그의 알 수 없는 행동을 파악하고 싶었다.
“네 관리자에게는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공주는 틈을 주지 않고 스태픈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가 실종됐다고 들었다. 그리고 네가 그 일과 관계가 있다지.”
스태픈은 쉬지 않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관리자는 떠났어요,” 스태픈이 대답했다. “그게 제가 아는 전부에요. 송구합니다. 공주님께 도움이 될만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때마침 한쪽 천장에서 커다란 바람 소리가 일어났다. 세 사람 모두 고개를 돌려 활송 장치를 통해 커다란 오물 통에 오물이 내려오는 모습을 바라봤다. 스태픈은 몸을 돌려 오물 통으로 재빨리 다가갔다. 스태픈은 그곳에서 오물 통이 오물로 채워지는 모습을 지키고 있었다.
그웬 공주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고드프리 왕자를 바라봤다. 고드프리 왕자 또한 난해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저자가 감추는 게 무엇이든지,” 공주가 입을 열었다, “저자는 절대 말하지 않을 거에요.”
“저자를 투옥시켜야겠어,” 고드프리 왕자가 대답했다. “그럼 입을 열겠지.”
그웬 공주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것 같지 않아요. 저자는 그렇게 해도 입을 열지 않을 거에요. 그는 분명 단단히 겁을 먹었어요. 아마도 관리자와 관련 있는 것 같아요. 그는 분명 무언가를 숨기고 있어요. 그렇지만 아버지의 죽음과는 관련이 없어 보여요. 제 생각엔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한 단서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를 몰아세워봐야 계속 입을 닫게 할 뿐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드프리 왕자가 물었다.
공주는 그 자리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공주는 어린 시절 거짓말을 들켰던 친구 한 명을 떠올렸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에게 사실을 말하라며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끝끝내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모두가 포기한 채 그녀를 내버려 둔지 겨우 일 주일 만에 그녀는 스스로 모든 사실을 털어놨다. 그웬 공주는 스태픈에게서 그때 그 친구의 모습을 투영했다. 그를 몰아세워봤자 입을 열지 않을 것이며 스스로에게 거리를 두어 그가 직접 입을 열게 해야 했다.
“시간을 좀 주죠,” 공주가 대답했다. “다른 곳을 찾아봐요. 다른 단서를 찾은 뒤, 뭔가 찾게 되면 다시 그에게 물어보죠. 그럼 입을 열 거에요. 지금은 아직 준비가 안 된 듯해요.”
그웬 공주는 구석에 서서 오물 통을 주시하는 스태픈을 바라봤다. 공주는 스태픈이 자신을 아버지의 암살자에게 안내해줄 인물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단지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스태픈의 마음 속 깊숙이 도사리고 있는 비밀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공주는 그가 매우 괴상하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아주 괴상한 인물이었다.
제4장
토르는 숨을 헐떡이며 눈을 깜빡여 눈 앞을 막은 물살을 밀어냈다. 그의 눈과 코와 입 주변으로 물살이 쏟아졌다. 배에서 물길에 휩싸여 미끄러지던 토르는 마침내 목재 난간을 잡았고 안간힘을 다해 그곳에 매달려 가차없이 휘몰아치는 물살을 버텼다. 온 몸의 근육이 후들거렸고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는 토르 스스로도 의문이었다.
토르의 주변으로 부대원들 모두가 그렇게 물살을 버티며 고군분투했다. 매달릴 수 있는 곳에는 모두 매달려 무섭게 휩쓸어가는 물살에 저항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모두가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었다.
모든 소리가 물길에 휩쓸려 들리지 않았고 눈 앞을 바로 보기가 어려웠다. 여름 날에도 불구하고 내리는 비는 차가웠고 온 몸을 휘감는 물길은 서늘하기 그지 없었음에도 추위에 떨 수 있는 여유를 누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콜크 사령관은 마치 비의 벽 따위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듯 배 위에 서서 인상을 쓰며 양 손으로 허리를 짚고 있었다. 그는 주변에 크게 외쳤다.
“자리로 돌아가라!” 콜크 사령관이 명령했다. “노를 저어라!”
콜크 사령관은 스스로 자리를 잡고 앉아 노를 젓기 시작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자리에서 미끄러지고 쓸려간 부대원들이 다시 자기 자리를 찾아 돌아왔다. 토르 또한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사력을 다했고 심장이 쿵쾅거리는 걸 느꼈다. 토르의 셔츠 안에 자리잡은 크론은 토르가 배 위에서 미끄러지고 다시 넘어지는 모습을 함께하며 흐느껴 울었다.
토르는 끝끝내 자리로 기어가 자신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몸을 묶어라!” 콜크 사령관이 명령했다.
아래를 보니 의자 밑으로 얽히고 설킨 밧줄이 연결되어 있었고 그제서야 그 밧줄의 용도가 이해됐다. 토르는 손을 뻗어 한쪽 손목에 밧줄을 채워 의자에 노와 손목을 단단히 고정시켰다.
꽤 쓸만했다. 토르는 더 이상 미끄러지지 않았고 이내 노를 저을 수 있었다.
토르 주변으로 부대원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함께 노를 저었다. 리스 왕자 또한 토르 앞자리에 착석했다. 배가 앞으로 나아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몇 분이 지나자 비의 벽의 세력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노를 저으면 저을수록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를 맞으며 피부가 타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온 몸의 근육에 통증이 계속 전해졌다. 마침내 빗소리가 가벼워지기 시작했고 토르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의 세기가 약해졌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하늘 위로 태양이 드리웠다.
눈앞의 광경을 가히 믿을 수 없었다. 화창하게 갠 맑은 날씨였다. 지금껏 토르가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체험이었다. 여전히 함대의 절반에 해당하는 뒷부분은 비의 벽에서 빠져 나오는 중이었고 나머지 앞 부분 절반은 마른 날의 내리쬐는 햇살을 받고 있었다.
드디어 함대 전체가 파랗고 노란 하늘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따뜻한 태양이 함대를 내리쬈다. 고요했다. 비의 벽이 빠르게 사라졌고 부대원들은 놀란 나머지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마치 다른 세계로 향하는 커튼을 걷어낸 듯한 느낌이었다.
“휴식!” 콜크 사령관이 외쳤다.
토르 주변으로 부대원들이 일제히 노를 내팽개치고 숨을 고르며 탄성을 내쉬었다. 토르 또한 이들과 마찬가지였다. 온 몸의 근육이 하나도 빠짐없이 후들거렸고 쉴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했다. 함대가 새로운 물길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자 토르는 그대로 주저 앉아 숨을 고르며 욱신거리는 근육에 힘을 뺐다.
마침내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한 토르는 기운을 내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봤다. 함대 아래 물속을 내려다보니 물 색이 변해있었다. 밝게 빛나는 붉은빛 바다였다. 기존과는 다른 바다를 항해하고 있었다.
“용의 바다,” 리스 왕자가 토르 뒤에서 물 속을 내려다보며 말을 건넸다. “희생자들이 흘린 피로인해 바닷물이 빨갛다고 들었어.”
토르는 바닷물 속을 바라봤다. 수면위로 거품이 일었고 깊은 곳 어디에선가 알 수 없는 괴물의 형상이 일어났다 금새 다시 가라앉았다. 형체를 확인할 만큼 오랜 시간 머물지 않았지만 토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더욱 깊숙이 고개를 숙이고 바닷속을 관찰할만한 배짱이 없었다.
토르는 몸을 돌려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혼란스러웠다. 비의 벽을 지나자마자 나타난 이곳의 모든 것은 가히 낯설었고 괴리감이 느껴졌다. 대기 중에는 옅은 붉은 빛 안개가 머물렀고, 그런 붉은 빛 안개는 바닷물이 있는 아래쪽에도 머무르고 있었다. 수평선을 바라다보니 수십 개의 작은 섬이 포착됐다. 수 많은 섬들은 마치 수평 선 위의 징검다리처럼 보였다.
바람이 세차게 불자 콜크 사령관이 앞으로 나와 외쳤다:
“돛을 올려라!”
토르는 부대원들과 함께 바로 움직였다. 바람을 정면으로 마주하도록 밧줄을 붙잡고 끌어올렸다. 돛은 바람을 싣고 항해했다. 그 어느 때보다 함대의 움직임이 빨라진 듯 했다. 함대는 섬을 향해 항해했다. 커다란 파도에 흔들거렸지만 파도가 어디서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함대는 파도의 움직임을 실었다.
토르는 뱃머리로 이동해 난간에 몸을 기대로 바다를 바라봤다. 리스 왕자가 토르 옆에 다가왔고 반대편에는 오코너가 함께 서있었다. 모두가 나란히 서서 빠른 속도로 향하고 있는 일련의 섬들을 주시했다. 세 사람은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며 그렇게 서 있었다. 토르는 수분이 가득한 바닷바람을 쐬며 휴식을 취했다.
마침내 토르는 함대가 특정한 섬 한 곳을 향해 항해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섬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그곳이 왕의 부대의 목적지라는 확신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안개의 섬,” 리스 왕자가 경탄하며 입을 열었다.
토르는 경외심에 섬을 유심히 관찰했다. 점점 시야에 그 모습이 잡혔다. 바위로 일구어진 험준한 불모지였고 양쪽으로 수 마일 가량 뻗어있는 길고 좁은 말발굽 모양이었다. 해안가에는 커다란 파도가 부서졌고 멀리 떨어진 함대까지도 파도가 부서지는 우르릉 소리가 들려왔다. 파도는 거대한 거품을 일으키며 바위에 부딪혔다. 바위 위로 세상에서 가장 작은 듯한 땅이 있었고 절벽은 수직으로 하늘 높이 치솟아 있었다. 토르는 함대가 어떻게 저 섬에 정박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 정체 모를 공간에 의아함을 더해주듯, 붉은 빛 안개는 섬을 에워싸고 이슬처럼 퍼져있어 햇살에 반짝거렸다. 이 모든 게 불길한 기운을 풍겼다. 토르는 섬에서 잔혹하고 섬뜩한 기운을 느꼈다.
“사람들이 말하길 저 섬은 수백만 년이나 됐대,” 오코너가 말했다. “링 대륙보다 더 오래된 섬이야. 아주 오래된 섬이지, 심지어 와일즈 왕국보다 더욱.”
“저 섬은 용들의 소유물이야,” 리스 왕자의 곁에서 엘덴이 덧붙였다.
섬을 바라보고 있자니, 하늘에서 두 번째 태양이 솟기 시작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밝게 빛나던 하늘에 해가 지기 시작하며 붉은 보랏빛 노을이 일었다. 토르는 두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해의 움직임이 빠르게 변하는 광경은 처음이었다. 이 곳에서는 태양 외에도 또 무엇이 다를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섬에 용이 살고 있어?” 토르가 물었다.
엘덴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듣기로는 섬 주변에 있대. 저 붉은 안개는 용의 숨결로 만들어진 거래. 섬 주변에서 밤에 숨을 쉬면 바람에 숨결이 타고 날아와 섬을 둘러쌓는 거래.”
순간 토르는 갑작스런 소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낮은 천둥 소지 같았다. 번개처럼 길고 큰 소리에 함대마저 흔들렸다. 여전히 토르의 셔츠 안에 있던 크론은 얼굴을 파묻고 낑낑거렸다.
부대원들 모두가 흠칫 놀랐고 토르 또한 몸을 돌려 주위를 살폈다. 토르는 수평선 어딘가에서 일몰 속에 꺼져가는 불길이 검은 연기 속으로 사라지는 걸 볼 수 있었다. 마치 화산 폭발 같았다.
“용이야,” 리스 왕자가 입을 열었다. “우리는 이제 용의 터전 안에 있는 거야.”
토르는 영문을 모른 채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여기서 안전을 도모하죠?” 오코너가 질문했다.
“너희들은 어디서든 안전하지 않다,” 누군가가 대답했다.
뒤를 돌아본 토르는 콜크 사령관을 보고선 깜짝 놀랬다. 양 손을 허리춤에 둔 채 부대원들 뒤에서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백일 훈련의 요지다. 매일을 죽음의 위협을 받으며 견디는 것. 이것은 훈련이 아니다. 용은 가까이 있으며 용의 공격을 막을 방법은 아무것도 없다. 용이 공격할 가능성은 적다. 왜냐하면 용은 자신의 터전에 있는 보물을 지키는데 더욱 열중할 테니까. 또한 용들은 자신의 보물을 떠나있길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너희들은 용의 울부짖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며 밤에는 용이 내뿜는 불을 목격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용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예측할 수 없다.”
토르는 또 다시 수평선 너머로 일어나는 불길과 낮은 포효 소리를 들었다. 또한 섬에 더욱 가까이 접근하면서 바위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는 파도를 지켜봤다. 토르는 가파르게 경사진 절벽과 바위를 주시했고, 대체 왜 저 섬의 끝없는 듯 높은 정상까지 올라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함대를 정착시킬만한 장소가 없어 보여요,” 토르가 말했다.
“그럼 너무 쉽겠지,” 콜크 사령관이 대답했다.
“그런 저 섬 위에 어떻게 가나요?” 오코너가 물었다.
콜크 사령관은 악마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헤엄쳐서 간다,” 콜크 사령관이 대답했다.
순간이었지만 토르는 콜크 사령관이 농담을 던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콜크 사령관의 표정을 보며 농담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토르는 침을 꿀꺽 삼켰다.
“헤엄이요?” 리스 왕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바닷속에는 괴물들이 득실거린다고요!” 엘덴이 외쳤다.
“괴물만 있으면 다행이지,” 콜크 사령관이 설명했다. “저 물살은 매우 위험하다, 저 소용돌이는 너희들을 빨아들이고, 저 파도는 너희들을 들쭉날쭉한 바위로 내팽개치겠지. 또한 바닷물은 매우 뜨겁다. 너희들이 설사 파도를 피해 저 바위를 모두 지나 섬에 당도하더라도 저 높은 절벽을 타고 마른 대지가 있는 절벽의 정상까지 올라가야 한다. 헤엄치다 바다 괴물한테 잡히지 않는다면, 절벽의 정상에 이를 때까지 이 모든걸 겪어야 한다. 새로운 보금자리에 온 걸 환영한다.”
토르는 부대원들과 함께 난간 가장자리에 서서 발 아래로 거품이 이는 바닷물을 바라봤다. 발 밑의 바닷물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소용돌이를 일으켰고, 눈 깜짝할 사이에 파도가 거세게 함대를 휘몰아쳐, 흔들리는 함대 위에서 중심을 잡고 서 있기가 더욱 힘들었다. 분노한 물살은 바다를 휘저었고 붉은 물빛은 마치 지옥을 담은 듯 했다. 더욱 최악인 건, 바다 속을 가까이 들여다보자 이곳 저곳에서 바다괴물의 형상이 나타나 긴 이빨을 꽉 깨물고는 다시 깊은 물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마침내 함대는 닻을 내리고 섬을 마주하며 바다 한가운데 정박했지만, 해안가와는 꽤 거리가 떨어져있었다. 토르는 긴장감에 침을 삼켰다. 고개를 들어 섬을 에워싸고 있는 바위를 바라봤고 함대에서 저 바위에 어떻게 해야 도달할 수 있을지 눈 앞이 캄캄했다. 매 순간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더욱 드세져 목청껏 소리를 질러야 서로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토르는 작은 보트 몇 대가 바다 위로 내려지는 장면을 지켜봤다. 몇몇 지휘관들이 보트를 저어 함대 밖으로 300미터 정도를 나아갔다. 부대원들을 태우기 위한 보트가 아니었다. 부대원들이 헤엄쳐 도달해야 할 보트였다.
토르는 이 모든 상황에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뛰어내려라!” 콜크 사령관이 명령했다.
처음으로 토르는 두려움을 느꼈다. 이러한 두려움으로 인해 왕의 부대의 일원이자 전사로서의 자격이 부족해지는 건 아닌지 궁금했다. 전사란 자고로 어떤 상황에서든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야 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토르는 잔뜩 겁을 먹은 스스로의 모습을 인정해야 했다. 토르는 두려워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실망스러웠고, 당당한 모습으로 상황을 마주하길 바랬다. 그럼에도 토르는 두려울 뿐이었다.
주변을 살피자 자신과 똑같이 잔뜩 겁먹고 긴장한 부대원들의 모습에 토르는 안도할 수 있었다. 토르 곁의 모든 부대원들은 난간에 바짝 붙어 서서 공포에 몸이 굳은 채 바닷물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특히 한 부대원이 너무 긴장한 나머지 온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방패 훈련에서 겁을 먹었던 그 부대원이었다. 벌칙으로 훈련장을 뛰어야 했던 바로 그 부대원이었다.
콜크 사령관 또한 그 부대원의 두려움을 감지했다. 그래서인지 보트를 해당 부대원 쪽으로 이동시켰다. 거센 바람이 콜크 사령관의 머리카락을 모두 헝클어뜨렸지만 콜크 사령관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듯 보였다. 세찬 바람에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그는 언제든지 자연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된 듯 했다. 콜크 사령관은 두려움에 질린 그 부대원에게 가까이 다가가 인상을 깊게 썼다.
“뛰어 내려라!” 콜크 사령관이 소리질렀다.
“못합니다!” 겁에 질린 부대원이 저항했다. “전 못해요! 안 할거에요! 전 수영할 줄 모릅니다! 집에 데려다 주세요!”
콜크 사령관은 부대원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부대원은 난간 뒤로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콜크 사령관은 부대원의 뒷덜미를 잡아 허공으로 들어올렸다.
“그렇다면 이제 수영을 배워야겠지!” 콜크 사령관이 사납게 대답했다. 토르는 두 눈을 의심했다. 콜크 사령관은 겁에 질린 부대원을 함대 아래로 던져버렸다.
겁에 질린 부대원은 비명을 지르며 허공을 갈라 부글부글 거품이 이는 바닷물에 빠졌다. 커다란 첨벙 소리와 함께 물이 사방으로 튀었고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허우적거리며 헐떡거렸다.